기구한 ‘여성의 삶’ 그린 손꼽히는 여성작가 4명…
기구한 ‘여성의 삶’ 그린 손꼽히는 여성작가 4명…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9.0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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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음사]
[사진=민음사]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사람의 수명이 제각각이듯, 책의 수명 또한 천차만별이다. 어느 작품은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금방 잊히지만, 어느 작품은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주목받으며 오래도록 읽힌다. 우리는 그런 책들을 ‘고전’이라고 부르는데, 고전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건 아마 그 속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가 동일하게 느끼는 문제의식이 담겨있어서일 테다. ‘여성의 삶’도 그중 하나. 최근 민음사가 「쏜살문고 여성 문학 컬렉션」에 소개한 여성 고전 작가들(네명)의 삶의 궤적과 작품을 들여다본다.

[사진=민음사]
캐서린 맨스필드(1888~1923). [사진=민음사]

먼저 소개할 작가는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캐서린 맨스필드(1888~1923). 1888년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태어난 그는, 1903년 영국으로 건너가 학교를 다닌 후 1906년 뉴질랜드로 돌아오지만 좋은 혼처를 찾아 결혼할 것을 강요받자 다시 영국으로 떠나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렇게 1911년 ‘캐서린 맨스필드’란 가명으로 첫 단편집 『독일 하숙에서』를 내놓지만, 주변 반응은 싸늘했고 그로 인해 우울증과 결핵을 앓게 된다. 상황이 나아진 건 1918년 두 번째 단편집 『전주곡』을 내놓으면서부터. 『전주곡』에 이어 1920년 『축복』이 업계와 대중의 호평을 끌어냈고, 1922년엔 20세기 단편 문학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가든파티』를 출간하면서 주목받는 작가 반열에 올랐다. 당대 최고 문인이었던 버지니아 울프는 “그의 작품은 나를 질투하게 한다! 나는 그를 찬미하고 싶다”고 평가했을 정도. 하지만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지 건강이 악화돼 1923년 투병 끝에 서른넷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비록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인간의 삶과 시대의 미묘한 불협화음을 정밀하게 묘사한 그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민음사의 ‘쏜살문고’(세계 문학을 새롭게 번역하고 디자인해 부담 없는 분량으로 편집한 문고본) 『뭔가 유치하지만 매우 자연스러운』에는 작가 사후에 발표된 열세 편의 작품이 담겼는데, 우선 표제작 「뭔가 유치하지만 매우 자연스러운」은 통근 열차에서 마주친 두 남녀의 사랑과 혼인, 그에 따른 불안과 고뇌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 밖에 캐서린 맨스필드는 권태롭고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에 대한 잔혹 동화로 읽히는 「시소」와 「검은 모자」 「독」, 참담한 임신 중절 경험을 술회하는 「이 꽃」, 자유를 억압하는 가부장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 「새 드레스들」과 「밀리」, 한평생 세계 곳곳을 떠돈 자전적 경험을 담은 「브뤼주로 향하는 여행」 「진실한 모험」 「무모한 여행」을 통해 20세기 여성의 눈으로 본 세상, 여성의 삶을 조명한다.

샬럿 퍼킨스 길먼(1860~1935). [사진=민음사]

샬럿 퍼킨스 길먼(1860~1935)은 미국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여성 작가다. 가정을 저버린 아버지로 인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1884년 화가인 남편과 결혼해 딸을 출산하지만, 이내 전통적 아내와 어머니 역할에 염증을 느끼고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 다만 당시 의학은 ‘지적 활동’(글쓰기)을 금지하고 육아와 가사에 전담하라는 충격적인 처방을 내리는데, 길먼은 이런 처방을 거부함은 물론 남편과 이혼한 후 자신의 경험을 담아 「누런 벽지」를 내놓는다. 해당 작품은 지금까지 페미니즘의 선구작이라 평가받는다.

길먼의 작품에는 그의 주제 의식이 뚜렷이 반영돼 있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한 「예상치 못한 일」과 「발상의 전환」 「영문학과 학과장」, 가부장제 내에서 억압된 ‘모성’ 문제를 풍자한 「엄마 실격」 「멸종된 천사」, 남성의 성매매 탓에 비극적 최후를 맞는 여성과 가문의 몰락을 그린 「오래된 이야기」, 폭압적 가부장제에 맞선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비즐리 부인의 증서」 「반전」 「벌들처럼」은 길먼이 지닌 문제의식을 또렷하게 전달한다. 생전에 여성의 정당 참여를 독려하며 여성정당을 조직하고, 페미니즘·인권·동물·생명권 운동을 전개했던 길먼은 1935년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크리스타 빈슬로(1880~1944). [사진=민음사]

크리스타 빈슬로(1880~1944) 역시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작가다. 1888년 독일에서 태어나 여자 기숙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조각가로 활동하던 중 결혼했으나 전통적 여성 역할에 반기를 들며 이혼을 감행한다. 이후 뒤늦게 레즈비언 성향을 자각한 후 여성의 우정과 사랑, 성 역할을 해체하는 작품을 다수 출간했는데, 그의 희곡 『제복의 처녀』를 원작으로 한 영화 <제복의 처녀>(1958)는 국내에서도 개봉해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다만 그는 여교사와 여제자의 ‘동성애’ 코드가 선정적으로 소비된 것에 관해서는 우려를 표했는데, 이는 이후 소설 『제복의 소녀』를 집필하는 계기가 됐다. 『제복의 소녀』에서는 주인공 ‘마누엘’의 성장 과정, 모녀 사이의 절절한 사랑, 어머니의 상실, 최초의 동성애적 끌림 등 영화와 희곡에서 생략됐던 내용이 대거 포함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재에 항거해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던 크리스타 빈슬로는 전쟁 막바지에 나치 스파이로 몰려 살해당했다.

히구치 이치요(1872~1896). [사진=민음사]

히구치 이치요(1872~1896)는 일본 근대 여성 문학의 선구자로서 2004년 일본 5,000엔권의 도안으로 선정된 인물이다. 그는 1872년 도쿄에서 태어나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했으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고 그로 인해 파혼을 당한 상황에서 살기 위해 소설 집필에 뛰어들었다. 1892년 「어둠 진 벚꽃」 「파묻힌 나무」를 발표한 후 극심한 생활고에 잡화점을 운영하면서 「꽃 속에 잠겨」를 발표해 호평은 얻었으나 가난에서 탈피하긴 어려웠다. 다만 문학적 집념으로 잡화점 문을 닫고 14개월간 집필에 전념했는데, 이 시기에 「섣달그믐」 「가는 구름」 「도랑창」 「십삼야」 「키 재기」 등의 수작을 완성했다. 히구치는 1896년 폐결핵 악화로 25세 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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