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묵의 3분 지식] 우리는 밈 머신(MEME Machine)이다
[조환묵의 3분 지식] 우리는 밈 머신(MEME Machine)이다
  • 조환묵 작가
  • 승인 2020.09.0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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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DNA)와 밈(MEME)

[독서신문] “우리는 생존 기계다. 즉 우리는 로봇 운반자다. 이기적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 넣은 로봇 기계다.” 

영국의 젊은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1976년에 출간한 책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 나오는 글이다. 그는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라고 선언했다. 인간은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생존 기계이며 자기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이기적 행동을 수행하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당시 과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세기의 문제작으로 수많은 찬사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까지 독서를 즐기면서 감동과 놀라움의 도가니에 빠진 적은 자주 있었지만, 이처럼 충격과 공포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내가 내가 아니다’라는 놀라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얼떨떨한 심정으로 끝까지 책을 읽어나갔다. 책 중반을 지나 종반으로 치달을 즈음, 이상한 단어가 눈길을 끌었다. 

“밈(MEME), 모방에 의해 인간의 문화를 전달하는 새로운 자기 복제자.”
유전자(DNA)의 특성은 자기 복제에 있다. 인간의 생물학적 유전은 정자와 난자에 의해 몸에서 몸으로 뛰어넘는다. 그러면 인간이 만들어내는 문화는 어떻게 전달될까? 이것도 유전자가 복제하는 것일까? 아니다. 인간의 문화는 모방이라는 과정을 매개로 해 뇌에서 뇌로 건너 다닌다.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유전자의 자기 복제를 통해 자신의 DNA를 후세에 전달하는 것처럼, 밈은 모방을 통해 자기 복제를 해 인간의 문화를 널리 전파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문화가 전파되는 이 최소단위를 그리스어 중 흉내 낸다는 뜻의 단어인 ‘미네네(Mimene)를 본떠  ‘밈(MEME)이라고 이름 붙였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학생은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뇌에서 뇌로 퍼져 자기 복제가 되는 것이다. 갓난아기에게 말을 가르치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엄마의 행위도 밈의 일종이다. 지식은 물론 사상, 신념, 종교, 예술 등의 수많은 밈이 모방을 통해 대대손손 이어진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책을 내려놓는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내가 단순히 내 유전자의 생존기계가 아니라, 나도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는 주체적 인간이라는 사실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밈이라는 또 다른 무언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유전자 복제만을 위한 로봇 운반자가 아니라는 점이 훨씬 안정감을 준다. 절망이 다시 희망으로 바뀌는 듯한 기분이었다.

최근 마치 인터넷 전문용어처럼 밈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수년 전부터 미국에서 시작돼 확산되고 있는 인터넷 밈의 열풍이 거세다. 인터넷 밈(Internet MEME)이란 이미지, 동영상, 해시태그, 웹사이트 등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는 어떤 생각, 스타일, 행동 따위를 말한다. 

대중문화의 새로운 소비 방식으로 등장하고 있는 인터넷 밈의 대표 사례는 가수 비의 ‘깡 신드롬’이다. 3년 전에 발표된 비의 ‘깡’ 뮤직비디오는 혹평 속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조롱하는 댓글들이 달리고 퍼지면서 조회 수가 점차 증가해 1천만을 돌파하고 언제부턴가 ‘1일 1깡’이라는 말이 돌았다. 뮤직비디오의 역주행 덕분에 비는 다시 강제 소환돼 새우깡 광고 촬영도 하고 예능에서 혼성그룹 ‘싹쓰리’로 맹활약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싸이, BTS, 블랙핑크 등 K-POP 뮤직비디오의 엄청난 조회 수도 인터넷 밈 현상으로 나타난 결과다. 인터넷 혁명 덕분에 K-pop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해 한류 문화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렇게 작은 밈들이 모여 밈덩어리가 되고 밈플렉스(Memeplex 밈복합체)로 발전해 하나의 문화가 탄생하게 된다. 

“인간의 몸은 유전자가 만들지만, 문화를 만드는 것은 밈이다. 우리는 밈의 전파와 확산을 위한 도구인 밈 머신이다.“ 

영국의 심리학자 수잔 블랙모어(Susan Blackmore)는 1999년 자신의 책 『밈 머신』(The Meme Mechine)에서 ‘인간은 밈 머신’이라고 역설했다. 리처드 도킨스가 처음 주창한 밈 이론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인간의 문화적 진화를 이해하려는 학문, 즉 밈학(Memetics)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밈이 모방을 통해 전달되기 위해 인간의 뇌를 폭발적으로 성장시켰고, 언어를 만들었으며, 유전자를 압박해 새로운 밈을 더 잘 퍼뜨리는 인간에게 유리하도록 자연선택의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밈은 진화하면서 책, 전화, 팩스 등 밈 복제 도구들을 만들어냈다. 컴퓨터가 발명되고 1989년 인터넷이 출현하면서 세상은 더 빠르게 변했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밈은 모방이 아니라 복사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는 5G의 초고속 통신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하나가 돼 새로운 밈 진화가 진행되고 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터넷을 통해 밈이 복사돼 전파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초고속 통신망을 선점하고 강력한 콘텐츠, 즉 밈을 많이 보유한 국가가 전 세계 패권을 쟁취할 것이라는 예측은 불 보듯 자명하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이 사생결단으로 싸우고 있나 보다.

 

■ 작가 소개

조환묵
(주)투비파트너즈 대표컨설턴트.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IT 벤처기업 창업, 외식프랜차이즈 등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실용적이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당신만 몰랐던 식당 성공의 비밀』과 『직장인 3분 지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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