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단비 감독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족 이야기를…”
[인터뷰] 윤단비 감독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족 이야기를…”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9.01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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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연출한 윤단비 감독 [사진=최현식 PD]

※ 인터뷰 내용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가족 소재의 영화, 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족의 이미지를 스크린으로 마주할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은 ‘그들이 관객들을 대신해 아파해준다’는 것이다. 조금 잔인한 말이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을 즐기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했던 카타르시스(catharsis). 의뭉스럽고도 자명한 비극의 본질!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은 언제나 관객들을 위해 고달픈 상황에 놓인다.

<남매의 여름밤>은 조금 독특한 분위기의 ‘고달픈’ 가족 영화이다. 한 가족의 고통과 불행을 무작위로 전시하거나 나열하지 않고, 스크린 안팎의 모든 가족이 안고 있는 미세한 균열을 응시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그렇다. 고통이 아닌 고통의 틈새와 간격을 다루는 영화. 그래서 더 사실적이며 서늘하고 공포스러운 영화. 일상과 비(非)일상이 교차하고 부딪히는 바로 그 지점에서 윤단비 감독은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폭력을 드러낸다.

재개발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은 옥주(최정운)와 동주(박승준)는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의 집으로 이사를 간다. 여기에 이혼 위기를 겪고 있는 고모까지 합세한다.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할아버지의 집에 모인 가족들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미묘한 갈등을 겪지만, 여름날의 혹독한 열기를 삶을 지탱하는 온기로 바꿔내며 힘겨운 일상을 견디고 버틴다.

<기생충>(2019)이 보여준 자본주의 사회의 잔혹성과 <걸어도 걸어도>(2008)가 지닌 가족구성원 간의 관계성의 어려움을 동시에 안고 있는 영화. 혹은 <꽁치의 맛>(1962)이나 <환상의 빛>(1995)처럼 떠나간 가족의 빈자리를 차분한 시선으로 관조하고, <기쿠지로의 여름>(1999)과 같이 가족을 찾아나서는 한 아이의 경쾌하면서도 슬픈 여름날의 풍경을 한아름 안고 있는 영화. 그렇게 <남매의 여름밤>은 바로 지금, 이 시대 가족들의 고달픈 초상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언론과 평단의 찬사는 물론 관객들의 사랑까지 한 몸에 받고 있는 영화. 신사동 모처에서 <남매의 여름밤>을 연출한 윤단비 감독을 만났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연출한 윤단비 감독 [사진=최현식 PD]

Q. <남매의 여름밤>이 제49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밝은미래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해외 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무려 4관왕을 달성했는데, 소감이 궁금하다

A. 사실 영화를 찍을 때 많이 불안했다. 그 불안함 속에서도 뭔가 희미한 빛을 따라가면서 영화를 찍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빛이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확신이라기보다는 내가 원래 생각했던 방향대로 흔들림 없이 찍어야겠다는 다짐과도 같은 빛이었다. 영화가 운 좋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고, 기대 이상의 반응과 성과에 놀랐다. 조그만 모니터에서 보던 감정들이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는 데에 대한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애초에 가고자했던 방향대로 믿고 가길 잘한 것 같다. 특히 로테르담에서 상을 받게 됐을 때, ‘영화가 자기 발로 여기까지 와줬구나’라는, 말하자면 영화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함께한 배우와 스태프들에 대한 감사함이 밀려왔다.

Q. 어려운 시국 속에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개봉 7일 만에 1만 관객을 돌파했다. 기억에 남는 관객들의 반응이 있다면?

A. 어떤 관객이 ‘중무장하고서라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평을 남겨주셨는데 (웃음)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코로나19로 엄혹한 시국인데, 영화 한편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신 관객분들에게 특히 감사하고 고맙다.

Q. 원래부터 영화를 좋아했는지? 영화감독이 돼야겠다는 계기 같은 게 있었나?

A. 고등학교 때, 이따금씩 글 잘 쓴다는 얘기를 들었다. 근데 이게 과연 나의 진짜 재능인지 아니면 그저 조그만 장점 중에 하나인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가 됐는데, 그때까지 진로를 명확하게 정하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그냥 학과에 상관없이 국립대학에 진학하길 원했다. 나는 뭔가 모르게 그런 선택과 생각들이 내키지 않았다. 그 와중에 야간자율학습을 빼고 (웃음) 도피하듯이 극장에서 영화를 많이 봤다. 그때 영화로부터 상당한 위안을 받았고, ‘영화가 정말 좋다’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 시절에는 한편의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감조차 없었다. 그래서 내가 영화를 연출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근데 대학 원서를 낼 때, 뭔가에 홀린 듯이 영화과를 한군데에만 넣어보자고 생각했고, 그래서 한군데를 넣었는데 결국 거기만 붙었다. (웃음) 그 길로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면서 영화가 더 좋아졌다. 영화를 찍고 만드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다. 그때부터는 정말 망설임 없이, 영화를 연출하는 거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Q. 인생의 첫 영화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A. 인생의 첫 영화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난다.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를 떠올리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2001)인 것 같다. 어린 나이였는데, 극장에서 되게 몰입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극장에서의 첫 체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이런 얘기를 하면 다들 놀란다. “해리포터가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라고?”하면서. (웃음)

Q. <남매의 여름밤>은 ‘옥주’와 ‘동주’ 남매가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의 집으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한, 일종의 ‘사회문제 영화’로서의 장르적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시나리오 탄생 배경이 궁금하다

A. 어떻게 보면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가족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 여러 사회적 풍경들이 녹아들 수밖에 없다. 근데 이 영화에서 특정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기보다는 가족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중요했다. 할아버지의 집에 몰리게 되는 상황이 다들 좋지 않지만, 그런 안 좋은 상황 속에서도 할아버지의 집이 주는 안온함이랄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뭔가 모를 따뜻함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첫 영화로 가족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행복한 가족이 아니라 흠결이 있거나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스크린에 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영화들을 볼 때 많은 위로를 받았다. 우리집만 이런 게 아니고 세상 모든 가족이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구나, 라는 것을. 그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Q. 영화를 보면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이 떠올랐다. 이층 양옥집이라는 공간적 배경도 그렇고, 자본주의에 의한 가족의 균열을 다뤘다는 점에서도… 감독의 생각은 어떤지?

A. <기생충>의 또 다른 판본이라고 평가해주신다면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웃음) 작품의 문맥을 구조적인 측면에서 깊이 헤아려주신 것 같다. 앞서도 잠깐 말했지만, 이 영화를 마냥 따뜻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너무 냉소적으로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영화 속에서 가족들이 처한 상황이 모두들 겪고 싶어 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당면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빠나 고모의 행동이 되게 미성숙하게 보이지만 만약 내가 저 상황이라면,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자식을 어떻게든 먹여 살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가정한다면 나 역시 그들처럼 행동했을 것 같다. <기생충>이 약간 우화적인 느낌이 있는데, 그것보다는 이 영화가 좀 더 사실적인 층위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다.

Q. 이 영화에는 ‘두 남매’, 그러니까 아빠와 고모, 옥주와 동주가 등장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제목을 <두 남매의 여름밤>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A. 맞다. (웃음) 중의적인 표현이니까. 그리고 두 남매가 개별적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삶의 순환 구조로 보면 아빠와 고모의 과거가 옥주와 동주일 수도 있고, 또 옥주와 동주의 미래가 아빠와 고모의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냥 <남매의 여름밤>이라고 제목을 지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연출한 윤단비 감독 [사진=최현식 PD]

Q. 영화에서 김추자의 ‘미련’이라는 곡이 세 가지 버전으로 변주되면서 영화의 주제가처럼 흐른다. 이 곡을 삽입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A. 원래 음악을 삽입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이런 느낌으로 봐주세요”처럼 연출자의 의도나 감정을 관객에게 강요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어서 최대한 지양하려고 했다. 그냥 관객들이 각자의 기억이나 감정을 영화의 이미지에 투영하길 바랐다. 그래서 오프닝 시퀀스에선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게 했고, 영화 중반부에 옥주가 자전거 타는 장면에서는 최대한 짧게 삽입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시퀀스에서는 영화 바깥인 엔딩 크레디트에서 흘러나오도록 했다. ‘미련’이라는 곡은 촬영감독님이 추천을 했다. 이 영화가 전반적으로 어떤 존재가 떠나고 그 존재가 떠난 자리에서 남겨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노래를 들어보니까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Q.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할아버지의 집으로 이사를 가는 옥주 가족의 모습을 롱테이크(long take : 한 장면을 컷 없이 길게 촬영하는 기법)로 촬영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A. 골목을 빠져나와서 도로까지 이어지는, 말하자면 거리의 지형에 관한 연결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인위적으로 이어 붙인 게 아니라 가족이 한 공간에서 빠져나간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집이 서울 외곽에 있는데, 그곳까지 가는 시간의 흐름을 단절하지 않고 길게 포착했다. 가족들이 타고 있는 자동차와 카메라 사이의 거리감은 통제되지 않은 현장에서의 우연성이 반영되기도 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오프닝 시퀀스에서 보이는 어떤 운동성이나 리듬감이 영화 곳곳에서 반복된다. 영화의 지향성이라기보다는 영화가 이런 리듬감을 가지고 진행된다는 걸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Q. 할아버지의 집안 곳곳을 비추면서 영화가 끝난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지?

A. 어쨌든 옥주와 동주가 짧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지냈던 공간에 관한 영화이니까 할아버지의 집 구석구석을 비추면서 끝내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 우리 곁을 떠나갔을 때, 그 존재가 머물렀던 자리를 배경으로 바람이 분다거나 벌레가 지나가는 현상에 의미를 부여할 때가 있다. 영화의 엔딩 시퀀스에서 할아버지가 앉았던 자리에 바람이 불면서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나비가 날아간다. 그런 이미지는 때에 따라 존재가 사라지고 흔적이 지워진다기보다, 그 존재가 살았던 시간이 부유하고 있는 것 같은 정념을 불러일으킨다. 엔딩 시퀀스에서는 그런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Q.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다면?

A. 최대한 인위적으로 만들지 말자, 라는 게 가장 중요했다. 배우들도 프레임 안에서 한정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게 연기할 수 있게 디렉팅했다. 특히 배우들의 내밀한 과거 이야기를 건드리면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배우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허구의 감정처럼 보이도록 하는 걸 제일 경계했다.

Q. 영화의 각본집도 출간됐다. 소감이 궁금하다

A.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나와서 너무 좋다. 특히 김혜리 기자님과 이슬아 작가님 그리고 최원준 교수님의 글을 보면서 비록 내가 찍은 영화이지만 내 영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Q. 차기작은 어떤 소재(혹은 장르)로 영화를 찍고 싶은지?

A.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되게 우물쭈물하게 되는데, 사실 진짜 준비된 건 하나도 없다. (웃음) 근데 스크린에서 같이 보고 싶은 배우들은 있다. 약간 프러포즈가 될 수도 있는데, 김태리 배우와 이지은(아이유) 배우의 조합을 스크린에서 너무 보고 싶다. 버디 무비보다는 좀 더 진한 감성의 영화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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