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식 칼럼]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박흥식 칼럼]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 박흥식 논설위원
  • 승인 2020.08.3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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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논설위원前방송위원회 평가심의국장
박흥식 논설위원
前방송위원회 평가심의국장

[독서신문] “우리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고 있다” 톨스토이가 말했다.

인류는 지금 거대한 도전 앞에 놓여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 위기가 일상 속에서 실감 나게 닥쳐오고, 슬픔과 아픔, 외로움 등도 겹쳐진다. 인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길을 걷고 있다.

이때 우리 사회는 공동체를 어떻게 조화롭게 유지할 것인지, 개인들은 남은 생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 안정적인 소득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러시아의 대표적 작가 톨스토이는 60세 이후에 자신의 문학적 성공의 허망함을 고백하면서 인생의 진리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삶의 깊은 성찰과 종교적 색채가 깊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의 저작 중 단편우화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그의 인생 후반기 대표작 중 하나다.

책의 내용은 하느님의 큰 뜻을 몰라 그 명령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죄로 날개가 잘려 지상에 내 버려진 천사 미하일이 가족이 먹을 빵도 떨어지고, 입을 옷조차 변변치 않은 가난한 구두 수선공 세몬 가족과 만나 동거하면서, 하느님의 세 가지 질문과 그에 따른 진리를 깨닫는다는 이야기다.

첫째, 사람의 내부(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미하일은 세몬과 그의 아내 마트료나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인간 내면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둘째,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이 곧 사망한다는 것을 모른 채 1년을 신어도 망가지지 않는 구두를 주문하는 부자 고객을 보면서 ‘사람에게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셋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세몬 가족과의 생활이 6년이 지났을 무렵 미하일은 고아가 된 쌍둥이를 거둬 키운 여인을 만난다. 그는 그제야 사람은 자신에 대한 걱정과 욕구 이외에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 이 소설의 세 가지 질문의 공통된 정답은 ‘사랑’이다. 길가에 알몸으로 버려진 자신을 거두어준 세몬의 가족과 부모를 모두 잃은 이웃집 아이를 키운 아낙도 모두 그들 안에 ‘사랑’이 있으며, 사람들은 모두 ‘사랑’으로 사는 것이라고 일깨운다. 우리 모두는 걱정에 휩싸여 살지만 실은 가족과 공동체의 ‘사랑’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요소들이 있다. 밥과 옷과 집, 의식주라는 기본적인 요소와 더불어 윤리와 도덕 같은 정신적 철학과 사회적 공동체의 지속적 관계를 위해 교양도 필요하다. 서양의 교양은 로마의 귀족 정신, 중세의 기사도, 그리고 근대에 형성된 신사도로 이어졌다.

동양의 전통적인 교양은 유교와 불교 등의 도덕적 사상과 정신적 바탕 위에 우리나라는 선비와 군자의 삼강오륜과 세속오계 정신으로 이뤄져 내려왔다. 하지만 현대의 사람들과 우리의 이웃들은 미디어 변화와 범람하는 상업적 정보 속에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휩쓸리며,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지적 수준 저하와 교양 부족의 세태로 변모했다.

특히 사회 지도적 위치의 사람들이 도덕적 타락과 윤리 의식이 부족해 많은 시민이 한탄한다. 동양의 고전들은 인간의 삶에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수신’을 첫 번째로 강조했다. 자기 자신의 정신과 몸을 가꾸는 것을 가장 중시했다. 또한 지도자는 ‘신언’을 중시하라고 했다, 즉 지도자는 ‘말을 삼가라’며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신중해야 함을 가르쳤다.

중국 송나라 진덕수는 휘종 황제 개인을 위해 『대학』과 『자치통감』 두 책을 통합해 『대학 연의』라는 책을 지었다. 『대학 연의』는 첫 장을 ‘수신’에 두고 황제의 몸가짐을 위해 ‘반일독서’와 ‘반일정좌’를 권했다. 그것은 수신을 위해서 ‘하루의 반은 독서를 하고, 하루의 반은 고요히 사색에 빠지라’고 조언했다.

지금 이시대, 코로나 19 위기는 경제 위기, 정치 위기, 그리고 윤리위기로까지 번졌다. 코로나 펜데믹과 기후 위기 속에서 우리 사회에 가장 상징적으로 다가온 사건이 최근 일어났다. 이른바 ‘광화문 집회’로 인해 코로나19 위기가 재점화되고 정치적 위기, 사회적 위기, 윤리적 위기를 초래했다. 이때 불행하게도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의료계와 정치권이 대립으로 의사들이 파업하고 의료시설들이 셧아웃 됐다.

이념적 편 가름과 집단 이기주의는 사회에 대한 믿음과 타인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린다. 우리 사회는 지금 정치적 편향과 극우와 극좌 같은 세력들이 서로를 향한 극단적 혐오로 대립하는 혐오 정치 형국이다. 서로가 겨누는 편견과 혐오는 다시 부메랑이 돼 되돌아오고 있다.

우리의 감정은 온전히 사적이지 않다. 즉 사회의 가치가 반영된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우리 사회에 숨어 있던 혐오, 편견 또한 세분화 돼 분출되고 있다. 이때 우리가 진정 필요한 것은 ‘자아성찰’과 ‘자기비판’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와 정치도 ‘사랑’이 필요한 때다. 우리 모두가 바이러스 앞에서 취약해졌듯이 인간은 모두가 연약함을 갖고 있고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이다. 다행히도 연민과 보살핌, 성찰도 다시 자리를 잡으려 하고 있다.

우리의 사회가 개인의 성찰을 바탕으로 편견과 혐오를 넘어 사랑의 사회로 가는 발판임을 명심하자. 우리 모두는 하나의 세계 속에 공생하는 일부이다. 우리 사회 공동체의 안전과 지속적 번영을 위해서 우리가 지켜야 할 예의와 교양이 절실해 보인다. 나와 너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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