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동주’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동주’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8.30 0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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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이준익 감독은 영화 <동주>(2015)를 통해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윤동주의 삶을 재조명합니다. 하지만 영화에는 윤동주 못지않게 중요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그의 사촌인 송몽규입니다. 송몽규는 <동주>에서 아주 묘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주인공에 가까운 조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영화의 전면에 자주 등장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면’입니다. 우리는 이를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준익 감독, 영화 <동주> 스틸컷

동주가 일본 경찰에 의해 심문을 받는 현재 시점의 장면이 끝나면 영화는 플래시백(flashback : 과거 회상을 나타내는 장면 또는 그 기법)해서 동주가 북간도 용정에 살았을 때의 과거 시점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때 카메라는, 윤동주가 아닌 송몽규를 전면에 포착합니다. 영화가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장면에서 주인공이 아닌 사람에게 화면의 지배권을 내어준다는 건 실로 흥미로운 일입니다.

감독은 여기서 딥 포커스(deep focus : 화면의 깊은 곳까지 포커스를 맞추는 기법)를 통해 송몽규를 전경에, 윤동주를 후경에 배치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인물 구도를 얼마간 지속적으로 보여줍니다. 감독들은 딥 포커스를 통해 인물 간의 관계를 묘사하기도 하는데, 바로 이 장면에서의 딥 포커스는 인물의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들의 성격과 행동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조금 더 살펴볼까요?

이준익 감독, 영화 <동주> 스틸컷

이 그룹 쇼트(group shot : 한 프레임 안에 여러 명이 등장하는 쇼트)에서 영화의 주인공인 동주는 화면의 가장 깊숙한 곳에, 그러니까 프레임 내부에서 가장 멀리 존재합니다. 익명의 마을 사람들조차 화면 구도 상 동주보다 앞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서 떠오르는 중요한 물음은 바로 ‘감독은 주인공인 윤동주를 왜 이렇게 찍었을까?’입니다.

앞선 언급처럼 <동주>는 분명 윤동주에 관한 영화이지만 송몽규가 도드라져 보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윤동주가 망국의 현실과 이룰 수 없는 꿈 사이에서 방황하고 고뇌하는 청춘의 표상이라면, 송몽규는 그러한 현실을 극복하고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실천가이자 혁명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독은 지속적으로 송몽규를 앞(혹은 위)에, 윤동주를 뒤(혹은 아래)에 배치함으로써 인물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 등을 드러냅니다.

이준익 감독, 영화 <동주> 스틸컷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동주>는 송몽규의 앞모습에 관한 영화이자 윤동주의 뒷모습에 관한 영화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장면에서 송몽규와 윤동주는 교차 편집(cross cutting :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행위를 교차시키는 편집 기법)으로 제시되는데, 재일 유학생 앞에서 혁명의 의지를 불태우는 송몽규와 시집 번역에 관한 일로 지인과 통화하는 윤동주의 교차편집은 그야말로 장면과 장면의 충돌을 일으키며 두 인물의 간격을 스크린에 아로새깁니다.

이준익 감독, 영화 <동주> 스틸컷

영화의 후반부에는 이러한 송몽규와 윤동주의 인물 구도가 역전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혁명에 실패한 후 일본 경찰에 의해 쫓기는 송몽규와 그를 위에서 바라보는 윤동주의 대화 장면이 그것입니다. 이어 영화에는 또 한 번의 교차편집이 등장하는데, 일본 형사가 거짓 진술서에 서명을 강요하자 두 인물은 똑같이 ‘부끄럽다’는 감정을 느끼고 ‘부끄럽다’는 말을 하지만 송몽규는 서명을 하고 윤동주는 서명을 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누군가의 가치관이 더 옳다(혹은 그르다)를 분별하고자 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위 두 장면은 인물의 구도와 교차편집으로 송몽규의 몰락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이처럼 감독은 앞뒤, 위아래 그리고 적절한 교차편집으로 각 캐릭터의 특징과 관계뿐만 아니라 망국의 땅에서 쓰러져가던 청춘들의 모습을 영화적으로 훌륭하게 형상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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