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허균
  • 황인술
  • 승인 2008.03.2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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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1569~1618)은 시문(詩文)에 뛰어난 천재로 여류시인 난설헌의 동생이며, 조선중기 문인, 정치가이다. 최초의 한글소설로 조선사회 모순을 비판한 『홍길동전』을 썼다. 최근 『홍길동전』보다 100년 앞서는 새로운 한글소설로 조선 초기 채수(蔡壽)가 지은 고전소설 『설공찬전』이 최근 발견돼 학계의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허균의 주요 작품으로 『한년참기旱年讖記』  『한정록閑情錄』 『교산시화蛟山詩話』 『학산초담鶴山樵談』 『도문대작屠門大爵』 『성소부부고』 『성수시화』등이 있다.
 
1. 「호민론豪民論」과 「유재론遺才論」
주자학이 지배하는 사회는 上과 下로 신분계층으로 나누어서 생각한다. 上은 귀하고 높은 사회적 지위로 下는 천한 사회적 지위로 서열이 있음을 나타내며 이러한 신분 질서는 고정되어 서로 넘나들 수 철저한 신분사회를 말한다. 上은 지배층으로 기품이나 위엄을 가져야하고, 下는 자신의 지위에 맞게 분수를 지키는 것이 ‘正名’으로 가장 좋은 상태의 사회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上과 下에 대한 개념이 지배하던 조선사회에 살았던 허균은 이와 반대되는 사회관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사회관은 「호민론」과 「유재론」에서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상上 - 존尊 - 귀貴 
   사회 =
            하下 - 비卑 - 천賤 
 
2. 豪民論
「호민론」의 주장은 주자주의 사회관과 달리, 상하 관계가 바뀔 수 있다는 주장으로 하층 백성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호민론」 원문 읽어보기
천하에 두려워 할 바는 오직 백성뿐이다. 백성은 물·불·범·표범보다 두렵기가 더한데, 위에 있는 자가 한창 업신여기며 모질게 부림은 무엇인가. 대저 이룩된 것만 함께 즐거워하면서, 항상 보는 것에 얽매이고, 그냥 따라서 법을 받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자는 항민(恒民)이다. 항민은 두렵지 않다. 모질게 빼앗겨서 살이 발겨지고, 뼛골이 뽑혀지며, 집에 들어온 것과 땅에서 나온 것을 다 내어서 한없는 요구에 제공하면서, 시름하고 탄식하여 윗사람을 탓하는 자는 원민(怨民)이다. 그러나 원민도 반드시 두렵지 않다.

자취를 고깃간에 숨기고 남모르게 딴 마음을 쌓아서, 천지간을 곁눈질하다가 혹여 그때에 사고라도 있으면 그 원(願)을 부리고자 하는 자는 호민(豪民)이다. 대저 호민은 크게 두렵다. 호민은 나라의 사단을 엿보다가 탈 만한 사기(事機)를 노려서, 팔을 떨치며 밭두렁 위에서 한번 호창(呼唱)하면 저 원민들이 소리만 듣고도 모이며, 모의하지 않아도 외치는 것은 같아진다. 항민들도 또한 살기를 구해서 호미와 고무래·창자루를 가지고 따라가서 무도한 자를 죽이게 된다.

진(秦)나라가 망한 것은 진승(陳勝)·오광(吳廣) 때문이고, 한(漢)나라가 어지러워진 것도 황건적(黃巾賊)이 원인이었다. 당나라도 왕선지(王仙芝)와 황소(黃巢)가 틈을 타서 난을 꾸몄는데 끝내 이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 이것은 모두 백성을 모질게 해서 제 몸을 봉양한 죄과이며, 호민이 그 틈을 타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대저 하늘이 임금[司牧]을 세운 것은 백성을 기르기 위함이고, 한 사람에게 방자하게 흘겨보며 구렁 같은 욕심을 부리도록 한 것은 아니다. 그런즉 저 진·한 이래의 화란은 마땅한 일이며 불행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땅이 비좁고 사람이 적으며, 백성이 또 가난하고 좀스러워서, 기이한 절조(節操)와 호협(豪俠)한 기개가 없다. 까닭으로, 평시에 위대한 사람이나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 나와서 세상에 쓰임이 되는 일도 없지마는, 난리를 당해도 또한 호민과 한졸(悍卒)이 어지럽게 외치며 앞장서서, 나라의 걱정이 되는 자도 없으니 그 또한 다행이다.

비록 그러나 지금은 왕씨 때와 같지 않다. 고려 때는 백성에게 부세(賦稅)하는 것이 한절(限節)이 있었고, 산택(山澤)에서 나오는 이익도 백성과 함께 하였다. 상업(商業)이 유통되고 공장(工匠)에게도 혜택이 있었다. 또 능히 수입을 요량해서 지출했으므로 나라에 남은 저축(儲蓄)이 있었다. 그리하여 갑작스럽게 큰 병란(兵亂)이나 상사(喪事)가 있어도 백성은 그 일에 대한 부세를 알지 못하는데 말기에 와서는 3공(空)을 염려하였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변변치 못한 백성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그 신(神)을 섬기고 윗사람을 받드는 범절(凡節)은 중국과 같다. 백성이 내는 부세가 다섯이면 관청[公家]에 돌아오는 것은 겨우 한 몫이고, 그 나머지는 간사한 자에게 어지럽게 흩어진다. 또 남은 저축이 없어 사고라도 있으면, 1년에 혹 두 번도 부과하는데, 수령(守令)이 그것을 빙자하고 덧붙여 거두어서 다함이 없다. 까닭에 백성들의 시름과 원망은 왕씨의 말기보다 심함이 있다.
 
그러하건만 위에 있는 사람은 태평스레 두려워할 줄도 모르고 “우리나라에는 호민이 없다” 한다. 불행하게도 견훤(甄萱)·궁예(弓裔) 같은 자가 나와서 몽둥이를 휘두르면, 시름하고 원망하던 백성이 가서 따르지 않을 줄을 어찌 보증하며, 기주(?州)·양주(梁州)와 6합(合)의 변은 발을 추켜 디디고서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민목(民牧)으로 된 자는 두려울 만한 형세를 밝게 알고, 시위와 바퀴를 고차면 그래도 미칠 수가 있을 것이다.
 
恒民 - 上으로부터 수탈과 부림을 당하면서도 그 부당성에 대해 전혀 저항하지 못하는 백성들로 이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怨民 - 수탈과 착취가 부당하다며 저항은 하되, 잘못된 것을 고치려는 의지와 행동은 없는 백성들이다. 이들 역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豪民 - 호민은 上의 부당성에 대해 알고 있으며, 시정하고자 하는 의지와 행동 능력을 지닌 백성이다.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행적을 감춰 고깃간 같이 은밀한 곳에 숨어 지내며 거사할 기회만 노리고 있다가, 일단 그 기회를 포착하면 원민과 항민을 선동하게 된다. 그러면 먼저 원민이 따라나서고 다음에는 항민까지도 그 대열에 동참해 손에 무기를 들고 일어나게 된다. 일이 이쯤 되면 누구도 그 기세를 막아낼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 호민이야말로 크게 두려워해야 할 존재다.
3공(空) - 흉년이 들면 祠堂에 제사를 못 지내고, 서당에 학생이 없게 되고, 뜰에는 개가 없게 된다.
6합(合)의 변 - 唐 희종(僖宗) 때에 황소(黃巢)가 난을 꾸민 일.

3. 「遺才論」
下의 백성 가운데에도 얼마든지 뛰어난 인재가 있다. 천한신분이라는 이유로 등용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遺才論」 원문 읽어보기
나라를 경영하는 자와, 함께 천직을 다스릴 자는 인재가 아니면 될 수 없다. 하늘이 인재를 내는 것은 원래 한 시대의 쓰임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인재를 내는 것은 고귀한 집이라 하여 그 부명(賦命)을 넉넉하게 하지 않고 미천한 집이라 하여 그 품부(稟賦)를 아끼지 않는다. 까닭에 옛날 철왕(哲王)은 그런 줄을 알고 인재를 초야에서도 구했으며, 혹 항오(行伍)에서 뽑았고, 혹은 패전하여 항복한 적장을 발탁하기도 하였다. 혹은 도둑의 무리를 들어 올리고, 혹은 고지기를 등용하였다. 쓴 것이 다 알맞았고 쓰임을 당한 자도 각자가 가진 재주를 다 펼쳤다. 나라가 복을 받고 다스림이 날로 높아진 것은 이 방법을 쓴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천하의 큼으로써도 그 인재를 혹 빠뜨릴까 오히려 염려하였다. 근심해서 옆으로 앉아 생각하고 밥 먹을 때에도 탄식하였다.

그런데 어찌해서 산림(山林)과 초택(草澤)에 보배를 품고도 팔지 못하는 자가 흔하게 있으며, 준걸처럼 뛰어난 영웅을 인재로서 낮은 자리에 침체해서 그 포부를 끝내 시험하지 못하는 자가 또한 많이 있는 것인가. 참으로 인재를 죄다 구하기 어렵고, 다 쓰기도 또한 어렵다.
우리나라는 지역이 좁으니 인재가 드물게 나서, 대개 예부터 걱정하였다. 그리고 이조에 들어와서는 사람을 쓰는 길이 더구나 좁다. 세족(世族)으로서 명망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높은 벼슬에는 통할 수 없었고, 바위 구멍, 띠풀 지붕 밑에 사는 선비는 비록 기이한 재주가 있어도 억울하게 쓰이지 못한다. 과거 출신이 아니면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없으며, 비록 덕업(德業)이 훌륭한 자라도 경상(卿相)에는 오르지 못한다. 하늘이 재주를 태어주는 것은 고른데, 세족과 과거로써 한정하니 항상 인재가 모자람을 병통으로 여기게 됨도 당연하다. 예부터 지금까지는 오랜 시일이고 세상이 넓기도 하나, 서얼(庶孼)이라 하여 그 어진 이를 버리고, 어미가 개가했다하여 그 인재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어미가 천하거나 개가했으면 그 자손은 아울러 벼슬길에 충수되지 못한다. 변변찮은 나라로서 두 오랑캐의 사이에 끼여 있으니, 모든 인재가 나의 쓰임이 되지 않을까 염려해도 오히려 나라 일이 이룩되기를 점칠 수 없다. 그런데 도리어 그 길을 막고는 이에 자탄하기를,

“인재가 없다. 인재가 없어.”

한다. 이것이야말로 월남으로 가면서 수레를 북쪽으로 돌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런 것은 이웃나라에게 알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부인네가 원한을 품어도 하늘이 그를 위해 감상(感傷)하는데, 하물며 원망하는 남정(男丁)과 홀어미가 나라 안에 반이 넘으니 화평한 기운을 이루기는 또한 어렵다. 옛날에는 어진 인재가 미천한 데에서 많이 나왔다. 그때에 만약 지금 우리나라와 같은 법을 썼더라면 범문정이 정승으로 되어서 공업을 세울 수 없었을 것이고, 진관과 반양귀는 강직한 신하로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마·양저와 위청 같은 장수도 왕부와 같은 문장도 마침내 세상에 쓰이지 못했을 것이다.

하늘이 낳아 주는 것을 사람이 버리니 이것은 하늘을 거슬리는 것이다. 하늘을 거슬리면서, 하늘에 기도하여 명수(命數)를 영원하게 한 자는 없다. 나라를 경영하는 자가 하늘을 받들어서 행하면 큰 명수도 또한 맞이할 수가 있을 것이다.

「유재론」은 ‘하늘(天)’에 비유하여 재주 있는 사람을 세상에 내보낸 것은 하늘이며, 내보낸 이유는 반드시 한 번 써먹기 위해서이며, 하늘은 재주 있는 사람을 내보낼 때 신분 차별 없이 평등하게 내보낸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인재를 등용할 때 평등한 조건에서 그 능력을 가려 능력대로 등용하지 않고 있어, 가문이 좋은 사람은 공부하지 않아도 높은 벼슬을 할 수 있고, 가문이 나쁜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그렇지 못하다. 하늘이 낸 인재를 인간이 버린다면 이것이야말로 역천이다.

호민론에 나오는 세 가지 유형의 백성을 그 성격별로 분류해보고 오늘날에도 유효한 유재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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