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설거지는 호사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설거지는 호사
  • 스미레
  • 승인 2020.08.2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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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치마를 동여매고 싱크대 앞에 서는 순간이 좋아진 것은 꽤 최근 일이다. 두 살 터울 내 동생은 대여섯 살 시절부터 설거지가 재미있다며 엄마를 도왔는데, 나는 한참 크도록 설거지를 피했다. 그릇을 씻고 정리하는 건 어쩐지 내 일 같지가 않았다. 시간만 걸리고 재미도 없었다. 미혼 시절은 물론 결혼을 하고도 혼자 있는 오후면 설거지가 싫어 끼니를 포기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내게 식기 세척기는 선택 아닌 필수가전이었다. 
결혼 후 첫 여름, 아이가 생겼다. 원체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 여름 입덧의 위세는 대단했다. 물에서도 그런 냄새가 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급기야는 부엌을 쳐다볼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동안 컵 하나도 제대로 씻을 수가 없었다. 입덧이 잦아들었을 즈음엔 또 배가 너무 불러있어 설거지가 녹록지 않았다. 아마 이때가 식기 세척기의 소용이 가장 쏠쏠했던 시기일 것이다.

엄마가 되고서야 설거지의 매력을 조금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자마자 벼락처럼 설거지가 좋아진 것은 아니다. 왜인지 아이가 젖을 먹던 시절에는 설거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때도 분명히 매일 싱크대 앞에 섰을 텐데, 출산이라는 거대한 경험에 가려져 흔적도 없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다. 단지 늦은 밤 이유식 냄비를 닦을 때, 아이가 깰까 조마조마했던 기억만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다.

아이의 성장은 계절만큼이나 빠르고 정확했다. 하루가 다르게 모습과 행동을 달리하는 아이 곁에서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릇을 씻고 행주를 접었다. 아이에게 밥을 지어 먹이고 치우는 건 이제 내 일과의 중심이 되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산책을 나섰다가 불쑥,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 감이 떠오르면 손끝이 간지러웠다. 해야 할 일을 깔고 앉아있는 것 같아 조바심이 들었다. 결국 “엄마 설거지 좀 할게” 말을 뱉고 부엌으로 향할라치면 아이가 내 손을 끌어당겼다. 어쩌면 그 말이 아이에겐, 놀이의 끝을 알리는 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앞치마를 매고 싱크대로 향하는 나를 곱게 봐주지 않았다.

두 살이 된 아이는 싱크대와 설거지하는 나 사이로 들어와 싱크대로부터 나를 밀어내었고, 세 살의 아이는 물장난을 하며 싱크대를 점령해 버렸다. 네댓 살의 아이는 종일 나가 노느라 싱크대 앞에 설 틈을 주지 않았다. 

어쩌다 설거지 좀 할라치면 아이가 나를 불렀다. “엄마, 책 읽어줘요.”, “엄마, 저것 좀 꺼내주세요.”, “엄마, 설거지 안 돼. 나랑 놀아요.”
 
매번 그렇게 '고무장갑 끼고 벗고' 실랑이를 몇 번이나 해야만 설거지가 끝났다. 겉으론 안 그런 척해도 속으론 애가 탔다. 일단 눈앞에 거품 묻은 그릇들을 해치워야지만 다음 일로 가뿐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설거지 더미를 모른 척 뒤로하고 아이랑 놀아줘야 할 때, 설거지를 안 해놔서 결국 또 새 접시를 꺼내야 할 때면 한숨이 나왔다. 결국, 그 몇 년간은 낮 설거지를 포기하다시피 하고 살았다. 그깟 집안일. 그럼에도,

조용하고 묵묵한 몰두, 
손쉬운 개운함, 
육아가 아닌 어떤 일. 

설거지를 할 때면 내게도 그런 작은 틈이 생기곤 했는데, 그게 그리 좋아서 기계가 있음에도 밀린 설거지를 다 하고 잠이 들었다. 복잡함 없는, 손에 익은 안전하고 순한 일이 주는 성취감이 그리워서. 정말로, 설거지 좀 원하는 때에, 속 시원히 해보는 것을 소원하던 시절이었다.

그 소원은 아이가 일곱 살이 된 해에 이루어졌다. 아이가 조금 의젓해지고 기관 생활도 하게 되었던 덕인 줄로 안다. 엄마의 설거지 시간에 아이는 식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한다. 창가에 앉아 종알대거나 노래를 부르고 심지어 일손을 보태기도 한다. 그동안 나는 설거지뿐 아니라 밥을 짓고 차도 끓이는 여유를 부린다. 꿈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옛말에 ‘애 볼래, 밭 갈래?’ 하면 밭 갈러 간다던데, ‘애 볼래, 설거지 할래?’ 하면 나는 설거지를 할 요량이다. 설거지하러 부엌에 들어가는 주부를 말릴 이는 아무도 없을 터이니. 

익숙한 동선을 따라 싱크대 앞에 서서 덤덤히 창밖을 살피고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시간. 어쩌면 내가 종일 기다려온 순간이 바로 이때일 것이다. 저녁의 어스름 속에서 설거지를 하는 순간. 익숙한 소음과 함께 그리운 사람들과 도시의 이름들이 머릿속에서 깜빡이기 시작한다. 손으론 묵묵히 그릇들을 헹궈내며 머리로는 떠오르는 도시들을 하나씩 그려본다. 대개 두 번째 도시를 방랑하다 보면 설거지가 끝난다.

씻기는 동안 달그랑대던 그릇들은 리넨 천 위에서 보란 듯이 순해져 있다. 오후 햇살 아래 얌전히 몸을 말린 식기들은 이제 노곤해 보인다. 단정한 자기 그릇들 위로 여름밤의 향기가 앉으면, 비로소 찾아오는 고요. 
보송해진 그릇들을 찬장에 올리고, 단출한 주방을 정리한다. 향초를 지피고 라벤더 향 핸드크림을 바른 뒤 탁! 부엌 불을 끈다. 가볍고 상쾌한 하루의 마무리. 그렇게 부엌을 나설 때면 어디에라도 다녀온 듯 마음이 개운했다. 설거지하는 시간은 내게, 부엌에서 즐기는 짧은 일탈의 시간이다. “엄마, 이제 나랑 캐치볼 해요!” 앞치마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현실로 나를 부르는 건 물론 아이 목소리고. 

부엌 불을 끄는데 하암, 부엌의 하품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진종일 집에서 가장 바쁜 곳. 그래서인지 늘 어둠에 잠기자마자 잠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오늘도 제 몫 이상의 소임을 다해준 내 부엌 식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새로울 것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 오늘이지만 마음껏 설거지하는 호사를 누렸음에 감사한다. 

 

 

 

■ 작가소개
- 스미레(이연진)
『내향 육아』 저자. 자연 육아, 책 육아하는 엄마이자 에세이스트.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짓는 엄마 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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