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카피’ 하나 열 실적 안 부럽다
잘 만든 ‘카피’ 하나 열 실적 안 부럽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8.24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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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이미지와 영상의 시대임에도 주목받는 글들이 있다. 바로 ‘카피’다. 카피라이터 이종서는 책 『카피사전』에서 그 이유를 “자극적인 영상이나 이미지는 기억 속에 짧은 시간 동안 잔상으로 남지만, ‘잘 말하여진 진실’인 카피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돌아보면, 카피란 비단 대기업의 광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소상공인에게도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홍보문구가 필요하고, 구직자에게도 면접관의 마음을 움직일 강렬한 말과 글이 필요하다. 직장인은 기획서 작성 시 이해가 쉽고 명료한 글귀를 고민해야 하며, 기자 역시 대중이 관심을 가질만한 헤드카피를 생각하게 된다. 어떤 카피가 좋은 카피일까? 좋은 카피들은 제각기 개성이 넘치지만 몇 가지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첫째, 좋은 카피는 역발상을 통해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오래도록 굳어져 온 관념을 파괴하는 무언가에 사람들은 주목하기 마련이다.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라는 매일유업의 카피는 과거 오랫동안 시장을 주도한 빙그레 ‘바나나 맛 우유’가 형성한 ‘바나나=노란색’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멀리 벗어난다. 삼성화제의 “有병장수시대” 역시 귀에 익숙한 ‘무병장수시대’에서 탈피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둘째, 좋은 카피는 중의적 표현을 이용한다. 가령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결혼해 듀오”는 ‘결혼해’라는 문구와 ‘듀오’라는 브랜드명이 각각 독립적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 ‘결혼해 주오’라고도 읽힐 수 있다. 배달앱 요기요의 “배달 요기요”도 마찬가지. 배우 전지현과 이정재를 내세운 SK텔레콤 ‘LTE-A’ 광고의 카피는 “잘 생겼다”였는데, 이 말에는 두 배우의 외모가 출중하다는 의미 외에도 LTE-A 기술이 탄생한 것이 좋다(잘! 생겼다)는 의미도 있다. <중앙일보>의 “뉴스를 중앙에 두다” 역시 중의적 표현이다. 

셋째, 좋은 카피는 익숙한 명언·관용구를 패러디한다. 동아제약은 살충제 광고 카피로 “바퀴벌레 최후의 만찬”을 선택했다. 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비장미 있는 명화가 살충제의 강력함을 나타내며 소비자의 관심을 받았다. 삼성전자 ‘갤럭시A’의 카피 “나는 찍는다 고로 존재한다”는 철학자 데카르트의 명제를 비튼 것이고 공익광고협의회의 “편리함은 짧고 쓰레기는 길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명언을 활용한 것이다. 

넷째, 좋은 카피는 감성을 자극한다. 가령 “잊을 수 없는 고향, 고향의 맛 다시다”(다시다) “‘너를 좋아해’라고 말하는 대신, 셔터를 눌렀다”(올림푸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초코파이) “‘아~ 해봐’는 사랑입니다”(오스템 임플란트) 같은 카피는 듣는 순간 가슴이 따듯해진다.  

다섯째, 좋은 카피는 ‘의인화’한다. 예를 들어 신도리코의 디지털 복사기를 대중의 머리에 각인시킨 카피는 “머리 달린 복사기가 왔다”였다. 단순히 ‘복사기에 디지털 기능을 덧붙였다’고 하는 것보다 훨씬 생동감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헤라’의 카피 “시간조차 숨죽이는 아름다움”은 시간을 의인화하는 동시에 ‘숨죽이다’라는 표현으로 화장품의 기능(화장이 잘 안 뜨는 기능)을 부각했다. 뷰티 브랜드 크리니크의 “목마르지 않는 피부”도 마찬가지. 사물에 숨을 불어넣으면 카피는 신선해진다. 

마지막으로, 좋은 카피는 유치환 시인의 시 「깃발」 속 문장 “소리 없는 아우성”과 마찬가지로 모순을 담고 있다. 가령 “쓸수록 버는 카드”(LG카드) “전할 수 없는 마음까지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SK텔레콤) “이겨도 지고, 져도 또 집니다”(불법 도박 공익 광고) 등과 같은 카피는 모순되는 말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더 강렬하게 전달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카피를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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