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8월의 크리스마스’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8월의 크리스마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8.23 0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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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허진호 감독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는 한국 멜로드라마의 고전 중 하나입니다. 영화가 개봉한지 20년이 넘게 흘렀지만 영화의 배경이 됐던 군산, 특히 초원사진관에는 아직도 수많은 연인이 정원(한석규)과 다림(심은하)의 애틋한 사랑을 추억하기 위해 방문하고 있습니다.

동네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정원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남자입니다.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남자에게 같은 동네에서 주차단속원으로 일하고 있는 다림이라는 여자가 불현듯 나타납니다.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그 사랑은 제대로 된 결실을 피우기 전에 끝나버리죠. <8월의 크리스마스>는 사랑보다는 죽음을 껴안고 있는 멜로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는 멜로드라마라면 응당 등장해야만 할 것 같은 두 남녀의 살가운 애정 표현도, 심지어 헤어질 때의 야단스러운 눈물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허진호 감독은 통상적인 멜로드라마의 이미지를 거부하는 동시에 두 남녀의 사랑의 풍경에 지속적으로 죽음의 이미지를 끼워 넣으며 색다른 멜로드라마를 조각해냅니다.

허진호 감독,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스틸컷

그러므로 이 영화는 ‘고요한 마음으로 바라본다’라는 관조(觀照)의 태도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카메라는 인물들의 삶에 함부로 끼어들거나 밀착하지 않습니다. 특히 카메라는 정원과 다림이 대화하는 모습을 여러 개의 컷으로 분할하지 않고 거의 대부분 아이 레벨의 투 쇼트(two shot : 프레임 안에 두 사람을 동시에 포착하는 것)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인물과 관객 사이에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데, 이는 <8월의 크리스마스>가 사랑을 이미지화하는 전반적인 화법과 맥이 닿아있습니다.

허진호 감독,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스틸컷

정원과 다림이 비 내리는 날 고정된 카메라 앞으로 서서히 걸어오다가 프레임 아웃(frame out : 인물이 화면 밖으로 나가는 것)되는 장면도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이 장면은 아마 영화에서 두 인물을 동시에 가장 가까이에서 잡은 쇼트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여기서 활용된 프레임 아웃은 카메라가 인물의 감정을 인위적인 클로즈업(close up : 가까이 찍기)으로 찍어내지 않고, 인물의 감정이 관객들에게 최대한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게 보일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일으킵니다.

허진호 감독,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스틸컷

놀이동산에서 첫 데이트를 하고 돌아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움직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다림은 정원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깊은 흥미를 보이며 자연스럽게 그의 팔짱을 낍니다. 이 순간에도 카메라는 별다른 움직임 없이 최소한의 조명과 패닝 쇼트(panning shot : 수평 이동)로 두 인물을 그저 바라봅니다.

허진호 감독,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스틸컷

영화 후반부에 정원이 병원으로 실려 가는 모습 또한 비슷합니다. 긴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는 러닝 쇼트(running shot : 카메라를 이동하면서 피사체를 촬영한 장면)로 이동감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철조망 너머에서 고정된 상태로 그 순간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입니다. 이처럼 <8월의 크리스마스>는 멜로드라마의 여러 감정들을 정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개봉 당시 ‘절제의 미학을 살린 멜로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위 장면들을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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