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속 반가운 한국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코로나 속 반가운 한국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8.21 1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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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찬 감독,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나쁜 놈이 나쁜 놈을 추격한다는 점에서 <추격자>(2008)가 떠오르기도 하고, 전직 국가 보안기관 요원이 거대 범죄 조직에 의해 납치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벌이는 활극이라는 점에서 <아저씨>(2010)와 <익스트랙션>(2020)의 기시감이 짙게 일렁이기도 한다.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아버지의 고군분투와 부성애를 담은 <테이큰>(2008)과 <부산행>(2016)의 잔영이 이따금씩 비치기도 하는 영화. 지금 한창 흥행 중인 홍원찬 감독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얘기다.

플롯 배치도 큰 군더더기가 없다. 한때 국가정보원 소속 요원이었지만 지금은 청부살인업자로 살아가는 ‘인남’(황정민)과 인남에 의해 살해된 형을 대신해 복수의 칼날을 가는 ‘레이’(이정재)의 쫓고 쫓기는 과정을 담은 영화. 무엇보다 배우들의 멋들어진 연기와 범죄 영화의 여러 장르적 재미를 장면 곳곳에 배치할 줄 아는 연출,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카메라의 움직임까지. 이 정도면 꽤 잘빠진 한국 상업영화라 불러도 좋겠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배우들의 액션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쇼트 배열이 인상적인데, 기존 액션 영화가 컷을 잘게 나눠 속도감을 증폭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 영화는 액션의 속도감보다는 액션의 사실감을 위해 불필요한 컷을 최소화했다. 특히 랑야오 마을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총격 장면에서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활용한 롱테이크(long take : 길게 찍기)와 프리즈 프레임(freeze frame : 정지 화면)의 효과를 적절하게 살려 인물간의 혈투를 사실적이면서도 다이내믹하게 연출했다.

홍원찬 감독,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홍원찬 감독,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인남이 일본 전통 가옥에서 레이의 형을 암살하는 오프닝 시퀀스 역시 강렬하다. 일본 전통 가옥 특유의 스산함은 하나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 강한 콘트라스트와 마침맞게 조응하며 극을 더욱 박진감 있게 만든다. 이어 인남과 레이가 처음 만나는 ‘좁은 복도 신’에서 카메라가 찰나의 슬로 모션을 통해 레이의 등장을 잡아내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극적 긴장감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황정민이 극을 안정적으로 조율하는 데 주력한다면, 이정재와 박정민은 각각 <관상>(2013)의 ‘수양대군’과 <동주>(2016)의 ‘송몽규’ 이후 자신들의 필모그래피에서 변곡점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캐릭터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박정민이 연기한 ‘유이’는 인남의 조력자 역할을 하며 숨 막히는 액션 상황에서 적절한 유머로 극의 숨구멍을 틔운다. 캐릭터도 굉장히 입체적으로 형상화돼 있는데, 결국 사람은 사람이 구원할 수밖에 없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오롯이 체현하고 있는 영화상 유일한 인물이다.

홍원찬 감독,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이에 비해 조연들의 활약이 아쉬운데, 특히 인남의 부인 ‘영주’(최희서)의 존재감이 그렇다. 영주는 인남이 딸을 구하기 위한 서사로 나아가는 데 일종의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기능적인 캐릭터에 머문다. 그러니까 최희서라는 배우의 훌륭한 연기에 비해 캐릭터 설정 자체가 애초에 상당 부분 도구화돼 있어 별 다른 의미 없이 소비되다가 끝에 가서는 급작스럽게 삭제 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홍원찬 감독,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대체로 장점들을 열거했지만 단점 또한 적지 않은 영화다. 인남과 레이는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클리셰(cliché)를 뛰어 넘을 정도로 비인간적인 공격력과 방어력을 지닌 인물로 묘사돼 지나치게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가령 레이가 태국 장기 밀매 조직의 아지트로 들어가 중무장한 상대 앞에서 거만을 떠는 모습에 일부 관객들은 실소를 터트리기도 했다.

또한 인남이 납치된 딸의 위치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부녀가 갑자기 눈을 마주치는 장면이 지극히 돌출된 쇼트로 제시되는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 갑자기 신이 공중에서 나타나 위급하고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는 종류의 극작법)를 연상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 등장하는 치밀하고 밀도 있는 일련의 액션 시퀀스들은 장르적으로 충분히 재미있으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일본과 태국을 넘나드는 글로벌 로케이션 또한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한다. 가산점을 주고 싶은 한국 상업영화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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